AI가 다 해준다는데, 왜 우리는 더 바빠졌을까?(1) 모든 걸 자동화한 팀이 여전히 사람을 더 뽑는 이유 - feat. Every, <After Automation>
코딩도, 디자인도, 영상도 AI가 다 해주는 세상이 왔습니다. 모든 것이 딸깍 몇 번에 끝납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그 어느 때보다 더 지쳐있을까요?
프롤로그
AI는 이미 세상을 정복했습니다. 우리는 AI가 없던 시절로 돌아갈 수 없어요.
알파고 쇼크때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AI가 분명히 엄청난 기술이지만, 마치 반도체나 우주 기술처럼 우리의 삶과는 무관한 기술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2022년 11월, OpenAI에서 ChatGPT를 공개하고 생성형 AI 대중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2026년이 된 지금, 이제는 정말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AI를 업무에 활용하고 있습니다. 클로드나 ChatGPT 같은 AI 어시스턴트는 이미 수십억 명이 쓰고 있고12 Claude Code, Cursor, Higgsfield같은 특정 목적을 위한 AI 도구들도 각 분야 실무자들의 필수 도구로 빠르게 자리 잡았습니다. 기존 소프트웨어 기업들도 위기감을 느끼며 AI 기능을 덧붙이거나 비즈니스 모델 자체를 전면 재검토하는 상황입니다. 실제로 마이크로소프트조차 천문학적인 AI 인프라 투자 대비 수익성(ROI) 회수 우려와 클라우드 성장 둔화로 인해 주가가 급락하는 충격을 겪었고4, 기존 SaaS 기업들 전반이 'AI가 소프트웨어 좌석(Seat) 모델을 파괴할 것'이라는 공포 속에 대규모 밸류에이션 조정을 맞이하기도 했습니다.5
선각자들이 약속한 AI가 가져올 미래는 달콤했습니다.
샘 알트만은 지능과 노동의 한계비용이 0에 수렴해 전 인류가 누리는 극적인 풍요의 시대가 올 것이라 공언했고6, 일론 머스크는 지능과 육체노동이 완전히 자동화되어 모든 재화 가격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강력한 디플레이션과 함께 '보편적 고소득(UHI)'의 유토피아가 열릴 것이라 장담했습니다.7 다리오 아모데이는 50~100년 치의 의학·과학적 진보가 단 5~10년 만에 압축 실현되어 질병과 빈곤이 완전히 퇴치될 것이라는 비전을 제시했고8, 젠슨 황은 80억 인류 누구나 자연어로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창작의 민주화'를 선언했죠.9
그들의 말대로라면 AI가 지루하고 고된 반복 업무를 알아서 척척 끝내주어 인간의 노동 시간은 획기적으로 줄어들고, 우리는 남는 여유 시간에 창작이나 여가를 즐기며 마음껏 놀기만 해도 되는 세상이 와야 마땅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AI를 매일 업무에 갈아 넣으며 쓰고 계신 당신, 정말로 행복해지셨나요?
자동화의 역설
"AI의 중심부에는 기묘한 역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우리 Every 팀은 자동화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자동화했습니다. (...) 하지만 정작 우리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인간이 해야 할 일이 더 많아졌습니다. 자동화를 더 많이 할수록, 전문가로서 인간이 해야 할 일은 더 많아집니다."
— Dan Shipper, 〈After Automation〉 中 [[아티클 — Every_After Automation (원문 및 국문 번역)]]
실리콘밸리의 미디어이자 AI 제품 스튜디오인 Every의 창업자 댄 쉬퍼(Dan Shipper)는 에세이 〈After Automation〉을 통해 가장 최전선에서 목격한 생생한 진실을 털어놓았습니다.10
그들은 약 30명 규모의 팀 전체가 코딩, 디자인, 글쓰기, 고객 응대까지 자동화할 수 있는 모든 영역에 Claude Code와 AI 에이전트를 전면 도입한 '극단적 AI 얼리어답터' 조직입니다. 빅테크의 신규 모델이 나오기도 전에 알파 테스트를 진행할 정도로 AI의 물결을 가장 빠르게 탔죠.
그렇다면 그들은 직원을 대거 해고하고 유유자적 여유를 즐기게 되었을까요?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직원을 단 한 명도 해고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작가, 에디터, 엔지니어를 계속해서 추가 채용하고 있습니다. 손으로 직접 코드를 타이핑하고 초안을 쓰는 물리적 노동은 사라졌지만, 인간이 검토하고 내려야 할 판단과 의사결정의 총량은 전례 없이 폭발했기 때문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질까요? 댄 쉬퍼는 두 가지 핵심 원인을 짚습니다.
- 제본스의 역설 (Jevons Paradox): 생산 비용이 0에 가까워지면 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폭증합니다.11 예전에는 1년에 하나 만들던 프로덕트나 기능을 이제는 한 달에 10개씩 기획하고 배포하게 되면서, 이를 조율하고 검수할 인간의 총 작업량은 오히려 늘어납니다.
- 전문성 '부산물'의 상품화 (Commoditization of Residue): AI가 인터넷에 공개된 정형화된 지식과 산출물을 복제해 흔해빠진 '공산품(Commodity)'으로 만들면서, 시장에서는 역설적으로 "남들과 완전히 다른 고유한 취향, 맥락, 집착(What's different)"을 가진 진짜 인간 전문가의 가치가 천정부지로 치솟았습니다.10
결국 자동화가 극단으로 치달을수록 인간은 일자리에서 밀려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AI 에이전트들이 쏟아내는 결과물을 지휘하고 최종 컨펌하는 오케스트라 지휘자(Human Sandwich 구조)'로 변모하며 뇌를 더 혹사당하는 기묘한 쳇바퀴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저도 몇 개의 AI 자동화 유튜브 채널을 직접 굴려보면서 신기하게 체감하는 것이 있습니다. 완전히 전자동으로 영상을 생성해 올리면 조회수가 처참할 정도로 나오지 않습니다.
반면 제가 직접 초반 3초의 훅(Hook)을 기획하고, AI가 뽑아낸 영상 소스들을 매의 눈으로 컨펌하며, 영상의 핵심 앵커(방향성)를 잡아주었을 때 조회수와 시청 지속 시간, 좋아요 비율이 압도적으로 좋았습니다. 저는 전문적인 영상 편집자도 아니고 화려한 특수효과를 넣은 것도 아닌데도 말입니다.
웬만해서는 그들을 이길 수 없다
AI는 인터넷에 존재하는 인류의 지식과 데이터를 모조리 집어삼킨 뒤, '가장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평균값'을 뽑아냅니다.
문제는 이 90점짜리 결과물이 월 몇만 원, 혹은 무료에 가깝게 모두의 손에 쥐어졌다는 사실입니다. 누구나 버튼 하나로 매끄러운 글과 그럴듯한 영상을 쏟아낼 수 있게 되자, 대중과 유튜브 알고리즘은 이것을 순식간에 '지루한 기본값'으로 치부해 버렸습니다.
우리가 느끼는 진짜 피로감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됩니다. 출발선 자체가 너무 높아져 버린 것입니다.
이제 적당히 매끄러운 문장, 적당히 타이밍 좋은 편집은 아무런 경쟁력이 없습니다. 그런 건 AI도 3초 만에 만드니까요. 결국 우리는 그 완벽한 기계의 평균값 위에서, AI조차 예측하지 못한 '나만의 이상치(Outlier)'를 만들기 위해 스스로를 쥐어짜내야 합니다.
그것이 꼭 대단한 예술적 창작일 필요는 없습니다. 새로운 지식 간의 낯선 연결, 남들은 무심코 지나쳤던 사소한 디테일에 대한 집착, 직접 현장에서 굴러본 자만이 아는 날것의 통증, 그리고 뻔한 정답을 비트는 삐딱한 시선 같은 것들이죠.
과거에는 우리를 지켜주는 든든한 '손기술(How)이라는 방패'가 있었습니다. 포토샵 펜툴을 장인처럼 따거나, 영상 컷을 0.1초 단위로 매끄럽게 잇거나, 엑셀 함수를 기가 막히게 다루거나, 오타 없이 깔끔한 코드를 짜내는 '숙련된 손노동'만으로도 충분히 전문가로 인정받고 밥을 벌 수 있었습니다. 그저 시간과 성실함을 들이부어 남들보다 벽돌을 조금 더 예쁘고 정교하게 쌓기만 하면 칭찬받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기능적 숙련도가 나를 지키는 갑옷이자 방패였죠.
하지만 AI가 그 수년간 갈고닦은 손기술을 단 3초 만에, 그것도 완벽한 90점의 퀄리티로 대체해 버리면서 우리는 이 든든했던 방패를 한순간에 빼앗겨 버렸습니다. 저는 30년을 갈아 넣어 의학을 배웠습니다. 논문 한 편의 서론을 쓰려고 며칠씩 문헌을 뒤졌고, 통계 코드가 안 돌아가서 밤을 새웠고, 그렇게 쌓은 것들이 제 실력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서론이 40초 만에 나옵니다. 제가 사흘 걸려 짜던 분석 코드도 마찬가지고요. 심지어 제 것보다 낫습니다. 그리고 불과 몇 년 사이, 저도, 그리고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도 모두, 아무런 갑옷도 없이, 가장 잔인하고 발가벗겨진 질문 앞에 맨몸으로 내던져졌습니다.
"그래서, 손기술 다 빼고 나면 당신은 대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사는데?"
"당신만의 고유한 취향과 관점은 뭔데? 왜 굳이 당신이어야만 하지?"
차라리 벽돌을 예쁘게 쌓으면 칭찬받던 시절이 나은 느낌이에요. 손기술은 성실하게 연습하면 늘었지만, '나만의 관점과 생각'은 내 모든 밑천과 영혼을 쥐어짜야만 비로소 나오거든요. 이제는 기능이 아니라, 내가 세상에 던질 수 있는 진짜 이야기가 너무너무 중요해진 것입니다. 나의 관점, 나의 생각, 나의 지문.
코다 (Coda): 다 좋은데, 나 자신은 어디에 있는가?
After Automation 은 아래의 하노크 랍비의 이야기로 마무리됩니다.
옛날에 아주 어리석은 남자가 살았습니다.
그는 아침마다 옷을 찾는 것이 너무 힘들어 밤에 잠자리에 들기조차 두려워했습니다.
어느 날 저녁 그는 결심하고 종이와 연필을 가져와 옷을 벗으며 어디에 무엇을 두었는지 정확히 적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그는 흐뭇해하며 메모지를 손에 들고 읽었습니다.
"모자" — 거기 있었고, 머리에 썼습니다.
"바지" — 거기 놓여 있었고, 다리를 넣었습니다.
마침내 옷을 완벽하게 다 차려입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커다란 혼란에 빠져 소리쳤습니다.
"다 좋은데, 나 자신은 대체 어디에 있는 거지? 세상 천지에 나는 어디로 간 거야?"
그는 찾고 또 찾았지만 헛수고였습니다. 자기 자신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랍비가 말했습니다. "우리 인간의 처지가 바로 이와 같다."
Every가 자동화의 극단에서 마주한 결론이자, 우리가 오늘날 매일 마주하는 피로감의 실체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AI 어시스턴트, 코딩 에이전트, 자동화 파이프라인까지 모든 완벽한 도구를 손에 쥐었지만, 역설적으로 우리는 수많은 결과물을 검수하고 컨펌하느라 전보다 더 헐떡이며 묻게 됩니다.
"모든 것이 자동화된 이 세계에서, 정작 나 자신은 어디에 있는가?"
(다음 글에서 계속)
References
- TechCrunch (2026.02) — ChatGPT reaches 900M weekly active users (OpenAI 공식 발표, 주간 활성 사용자 9억 명 돌파) ↩
- Reuters (2026.06) — ChatGPT app hits 1 billion monthly active users (글로벌 월간 활성 사용자 10억 명 돌파) ↩
- OpenAI Official — Scaling AI for everyone ↩
- Bloomberg — Microsoft Azure Growth Slowdown Fuels Fears Over AI Payoff (천문학적 AI CapEx 대비 수익화 지연 우려로 인한 MS 주가 급락 및 빅테크 AI 회의론) ↩
- Financial Times — SaaS stocks slump as generative AI threatens software business models (AI 에이전트 도입에 따른 전통 SaaS 라이선스(인당 과금) 모델 붕괴 위기 및 주가 하락) ↩
- Sam Altman (2021/2024) — Moore's Law for Everything & The Intelligence Age (지능 한계비용 0 수렴 및 풍요의 시대 도래) ↩
- CNBC / UK AI Safety Summit (2023.11) — Elon Musk: AI will create universal high income and end the need for work (노동 종말 및 탈희소성 디플레이션 유토피아) ↩
- Dario Amodei (2024.10) — Machines of Loving Grace (강력한 AI를 통한 100년 치 과학·의학 진보의 압축 실현) ↩
- NVIDIA / Jensen Huang — World Government Summit: Everyone is now a programmer (자연어를 통한 프로그래밍의 종말과 창작의 대중화) ↩
- Dan Shipper (Every, 2026.05) — After Automation: AI progress creates more work for humans, not less (AI 자동화가 인간의 일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고난도 의사결정 수요를 폭증시킨다는 Every 공식 분석) ↩↩
- William Stanley Jevons (경제학 원론) — The Coal Question & Jevons Paradox (기술 발전으로 효율이 증가할 때 자원의 총 소비량은 오히려 증가하는 '제본스의 역설') ↩
- METR (Model Evaluation & Threat Research, 2026) — Measuring Frontier AI Capabilities in Complex Tasks (Claude 등 차세대 프론티어 모델의 복합 경제 과업 수행력 측정 보고서) ↩
- Financial Times / Citadel Ken Griffin (2026) — Citadel's Griffin warns AI agents are automating elite white-collar jobs (초고숙련 전문직·지식 노동의 에이전트화와 재편 경고) ↩